'군'으로 남은 왕들: 연산군과 광해군은 왜 묘호가 없을까
조선 27명의 왕 가운데 연산군과 광해군만 '조'나 '종'이 아닌 '군'으로 불립니다. 폐위의 의미, 실록 대신 '일기'로 남은 기록, 단종이 복위된 사연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조선 왕의 이름은 대부분 '조'나 '종'으로 끝나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은 '군'으로 불립니다. 두 사람 모두 왕위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폐위된 왕은 왕자 신분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왕은 더 이상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왕자의 작위인 '군(君)'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종묘에 신주가 모셔지지 않았으므로 묘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기 전 받았던 군호를 그대로 써서 연산군, 광해군으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무덤 역시 왕릉이 아니라 '연산군묘', '광해군묘'처럼 묘(墓)로 불립니다.
연산군(재위 1494~1506)
성종의 맏아들로 즉위한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였고, 폭정을 거듭했습니다. 1506년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 그를 몰아내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중종입니다. 연산군은 강화 교동도로 유배되었다가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해군(재위 1608~1623)
선조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세자로서 활약한 광해군은 즉위 후 전후 복구에 힘쓰고,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면 왕권을 지키는 과정에서 형제를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한 일은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유배 생활 끝에 제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갈립니다.
실록이 아닌 '일기'
두 사람의 재위 기록은 '실록'이 아니라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라는 이름으로 편찬되었습니다. 왕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름에서 격을 낮춘 것입니다. 다만 기록 방식은 다른 실록과 같은 체제를 따랐고,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로 함께 전해집니다.
단종: 군에서 다시 왕으로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도 처음에는 '노산군'으로 강등되었습니다. 그러나 200여 년 뒤인 숙종 때(1698) 복위되어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기록도 처음에는 『노산군일기』였다가 이후 『단종실록』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왕의 이름은 후대의 평가에 따라 바뀌기도 했습니다.
왕이 되지 못했지만 왕으로 불린 사람들
반대로 살아서는 왕이 아니었지만 세상을 떠난 뒤 왕으로 높여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추존왕이라 합니다.
| 추존 묘호 | 생전 신분 | 관계 |
|---|---|---|
| 덕종 | 의경세자 | 성종의 아버지 |
| 원종 | 정원군 | 인조의 아버지 |
| 진종 | 효장세자 | 정조의 양아버지(법적 아버지) |
| 장조 | 사도세자 | 정조의 친아버지 |
| 문조(익종) | 효명세자 | 헌종의 아버지 |
쫓겨난 왕은 '군'으로 낮춰지고, 왕이 되지 못한 세자는 후손 왕에 의해 왕으로 높여지기도 했습니다. 왕의 이름 자체가 그 시대의 정치와 평가를 반영하고 있는 셈입니다.